나는 어릴 때부터 밴드를 좋아했고(아무래도 고스트스테이션의 영향이 크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얼터너티브로 시작해 점차 드림팝, 슈게이징 쪽으로 빠져서 포스트락에 정착한 상태다(아 지금은 Sean nicholas savage를 제일 좋아하는구나). 아무튼 어릴 땐 프로그레시브 락이 도통 이해가 안 되었었는데 지금은 이것만큼 영혼이 편안한 게 없다. 워낙 좋아해서 여기저기 추천했지만 좋다고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인터넷 방송에 마블발 음악을 신청했다가 청취자들이 죄다 나가버린 일이 있었고, 친구에게 추천했을 땐 '이게 웬 소음이냐' 라는 반응에 조금 슬펐다. 우리나라 인디씬에서 내게 언제나 첫번째인 코코어(+몸과 마음)를 추천했을 때도, 마찬가지로 '이상하다' 는 반응이 돌아왔다. 자기도 좋아하는 밴드가 있다던 친구는 내게 원디렉션을 추천했었지. 음... 그 청년들도 훌륭하지만 (그 당시)내 취향은 mono라든가 chapterhouse, mogwai 쪽인데... (그 당시의 이야기)
혁오밴드의 인기는 내게 참 씁쓸한 일이었다. 외국의 인디밴드들 사이에서 한창 형성된 분위기를 이것저것 버무려놓은 느낌이라 끝까지 들을 만한 게 없었다. 다 어디서 들어본 곡들이고, 너무 뻔해서 끝까지 들을 맛이 안 났다. 그걸 완전 새로운 음악이라면서 추앙하는 분위기가 싫었다. 이미 넘쳐나고 있는 게 뭐가 그렇게 트렌디하단 말인가. 혁오가 한창 화제일 때, 밖에서 혁오 음악을 크게 듣는 사람을 종종 봤다. 헤드폰 밖으로 '위잉, 위잉'하는 가사가 새어나올 때면 어찌나 짜증이 나던지. 아, 예. 트렌디하시군요. 예.
엠넷의 새 프로그램 <싱스트리트>에 로 바이 페퍼즈가 나온다. 신인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 민망할 만큼 잘 하는 밴드고, 무엇보다도 내 취향의 슈게이징을 한다! 처음에 들었을 때 얼마나 가슴이 벅찼던지. 그래서 기쁘다. 대중적이지 못한 수준을 넘어 '이상하다'는 평가를 받기 십상인 장르의 밴드가 TV에 나온다는 게. 그러나 한 편으로는 씁쓸하다. 이들 음악의 훌륭함을 진정으로 알아줄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물론 슈게이징, 포스트락 장르가 아예 수요가 없는 것은 아니다. 분명 꾸준히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여전히 마이너한 것 또한 사실. 내 주변에 슈게이징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그렇게나 박해받았던(?) 취향인데, '이게 요즘 트렌디한 음악이라더라', '무슨 음악경연대회에서 우승했다더라'라며 힙스터지망생들이 자기네들 이미지 꾸미는 용도로 소비한다면 나는 좀 울적해질 거야. 그러면서도 내심 음악판을 아작내길 바라는, 리스너의 모순된-솔찍헌-심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