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에 다녀왔다. 종교가 있냐는 질문을 받으면 무교라고 대답하지만, 그냥 절의 분위기가 좋아서 엄마 따라 가끔 간다. 별 의미 없이 꼬박꼬박 절도 한다. 그전엔 절을 할 때마다 속으로 빌었었다. 가족들이 건강하게 해주세요. 돈도 여유가 있었음 좋겠어요. 아 또 뭐가 있지. 세상 모든 동물들이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어림도 없는 일이다. 평소엔 얼씬도 안 하면서 밥 나눠줄 때나 어슬렁거리는 내 말을 들어줄 리 만무하다. 내가 노력해야 할 일이지, 절한다고 이루어질 거란 기대따위도 물론 하지 않는다.
올해는 아무 생각 없이 절을 했다. 건강이든 돈이든, 무언가를 기원하며 절을 하지 않았다. 날씨가 좋았고, 내가 좋아하는 얼굴들이 곁에 있었다. 천막 밑에서 수박과 토마토를 나누어 먹었다. 이 절 옆에는 외갓집이 있었다. 아무것도 바랄 것이 없었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절을 했다. 심지어 월드 피스도 기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걱정 없다. 부처님의 자비가 온누리에, 라고 하지 않는가. 월드 피스를 기원하는 일은 스님들의 불심으로도 충분할 것 같다. 나밖에 모르는 인간이 된 행복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