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구성이 산만하다고 해서 좀 걱정했는데, 나쁘게 말하면 산만하고 좋게 말하면 입체적이다.
같은 주제 아래 과거와 현재의 예술을 비교-대조할 수 있게 하려 한 것 같은데, 그걸 위해서는 해당 섹션의 주제를 중심으로 작품을 감상하고 다시 전체적으로 둘러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게 왜 이 섹션에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하나의 예술품이 하나의 의미만 갖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또한 해당 주제에 대해 상이하게 바라보는 것들이 한 공간에 있기때문에 그 점을 이해해야 한다.
문제는 작품의 구성보다도 전시품 자체에 있다. 별로 알차지 않음...
그래도 세크메트 좌상과 라파엘로의 스케치, 아시리아왕의 사자사냥, 아폴로 두상, 청년의 두상, 이시스 여신상, 아시리아의 황금 마스크, 요한 요하임의 풀치넬라 인형, 에로틱한 장면이 있는 푸틸은 흥미로웠다. 아시리아왕의 사자사냥에는 글자가 새겨져있는데 그게 다 해독이 되었다는 게 참 신기했다. 아폴로 두상은 잘생겼고, 청년의 두상도 엄청나게 잘생겼는데 특히 반질반질한 피부의 윤기가 놀라웠다. 이시스 여신상은 교과서에서 본 기억이 나는데 의외로 작았다. 에로틱한 장면이 있는 푸틸은 상당히 선정적이었는데 누구의 취향이었을지 궁금했다. 아, 그리고 이집트 여인의 관뚜껑은 반질반질하게 윤기가 났는데 발굴 후에 광택제를 바른 것인지 아니면 원래부터 광택이 있던 것인지 궁금했다.
예술품을 보고 연대를 확인할 때마다 시간여행을 하는 그 느낌은 정말 묘하다. 그 시대 사람들의 손이 닿았던 물건이 내 앞에 있다는 그 느낌. 또한 그 시대에 그 정도의 예술이 가능했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리고 이 날의 진상. 어째 가는 전시회마다 이렇게 찝찝한 일이 생기는지 모르겠다. 대영박물관전은 오전 11시부터 열리는데, 예술의 전당 초입 비타민스테이션에서 표를 구입한 후 한가람미술관으로 이동을 해야 한다. 그런데 티켓을 시작 10분 전, 즉 10시 50분부터 살 수 있었다. 조금 일찍 도착한 나는 그냥 기다렸는데, 나보다 먼저 도착한 아저씨는 그게 못마땅했나보다. 앞에서 대기하고 있는 매표소 직원에게 계속해서 불평을 하고 있었다. 어떻게 티켓을 입장 10분 전부터 판매할 수 있냐, 여기서 한가람미술관까지 올라가는 데만 10분이다(절대 아님. 보행기 쓰시는 노인분도 아니고 두 다리 멀쩡한 아저씨인데 무슨 10분? 계단 두 번 올라가면 바로 있구만.), 이건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이다! 라며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비슷한 나이대의 주변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맞장구를 치며 거들었다. 애써 빡침을 감추려하는 직원의 표정이 안타까웠다. 결국 매니저가 왔고, 그 아저씨는 이런 말을 했다.
공무원이면 9시부터 일을 해야지!
전시 시작 시간이 너무 늦잖아!
국민을 위한 곳, 예술의 전당이면서 국민을 편하게 해주어야지!
뒤에서 듣다가 나 참 어이가 없어서. 이 아저씨는 전시가 11시부터라고 해서 그 때부터 일을 하는 줄 아시나... 9시에 출근해서 준비할 거 다 하고 11시에 개방하는 거지, 자기 사정에 맞추어서 전시시간을 조정하라는 건 떼쓰는 어린애도 아니고. 물론 티켓을 10분 전부터 판매하는 건 이동거리와 관계없이 촉박하다는 생각은 들었다. 하지만 비타민스테이션에서 일괄적으로 표를 판매하는 것이 매표소를 각각 배치하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이다. 공연장 혹은 전시장 앞이 혼잡해지는 것도 막을 수 있고.
아저씨는 자기 주장의 타당성(대다수의 공통된 의견)을 확인하고 싶은 듯, 여태껏 이런 건의가 없었나? 라고 물었다. 매니저는 '처음 있는 일'이라고 대답했고, 유관부서에 전달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지금 당장 해줄 수 있는 건 없으니까 그만하시라고요'라는 말의 완곡한 표현. 애초에 현장에서 이렇게 건의하는 건 에너지 낭비다. 고객의 소리에 건의한다고 해도 사무적인 답변이 돌아오는 게 보통인 것을. 아니, 아저씨도 그냥 화풀이였는지도 모르지. 직원들이 불쌍했다. 웃는 얼굴로 응대했지만 빡침이 느껴졌다. 예전엔 전시나 공연 보러 가면 애들이 거슬렸는데, 요즘은 나이드신 분들이 더한 것 같다.
'잡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상의 동물들 (0) | 2016.04.03 |
---|---|
4월의 풍경 (0) | 2016.04.02 |
결혼식의 기이함 (0) | 2016.03.24 |
반 고흐 인사이드 : 빛과 음악의 축제 (0) | 2016.03.19 |
스탠리 큐브릭전 (3) (0) | 2016.03.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