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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멀홀랜드 드라이브(Mulholland drive)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를 처음 본 게 중학생 때인가 그랬다. 이레이저 헤드.

그 나이에 봐서 그런지 린치의 작품 중 가장 난해한 작품으로 머리에 남아있다.

그 때 한창 컬트에 빠져있었는데... 크로넨버그, 스캐너즈 같은 것 보고.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방과 후 체크무늬 자주색 교복을 갈아입지도 않은 채

가방만 내팽개치고 OCN 앞에 앉아있던 시절.

불행인지 다행인지 마침 크로넨버그의 '플라이'가 방영중이었고, 19금이었지만 엄마는 신경도 안 쓰셨다. 

(바느질 하느라 못 보신 걸 수도 있고, 야한 것만 아니면 대수롭지 않게 여기셔서 그런 걸 수도 있다.) 

'플라이'를 처음 봤을 땓의 그 느낌은... 너무 흥미진진해서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특히 오래된 영화인 게 티가 나는 화면에 비해서

영화에 대해 쥐뿔도 모르던 내가 알 수 있을 정도로 특수분장이 뛰어나서 감탄했다.

어쨌거나, 그래... 난 그 때부터 글러먹은 거시여따!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린 거지.




초현실주의 회화 작품을 감상하는 듯한 린치의 작품세계. 그래서 난해하다는 평가도 종종 받지만,

적어도 이 영화는 꽤 친절하다. 난해한 걸로 치면 이레이저 헤드가 훨씬 더...ㅎㅎ

초반부는 두 개의 주된 에피소드가 있고 나머지는 분열된 에피소드인 건가? 라고 추측했는데,

끝부분에 가서 이 에피소드들을 멋지게 꿰어준다.

감이 잘 잡히지 않는 불가해한 존재도 등장하긴 하지만,

트윈픽스에서 그랬듯 그것은 불가해한 존재 그대로 놔두어도 좋겠다.

정체가 뚜렷이 드러나면 오히려 무의미할 듯. 

인간이 그 존재를 어떻게 파악할 수 있겠는가. 묘사는 할 수 있어도.




다이앤이 만들어낸 허구는 현실과 완전히 대치된다.

리타가 먼저 자신에게 육체적으로 다가오고, 여배우로서의 재능도 인정받는 등등의 모든 것

이 세계는 그녀의 도피처(아마 정신병에 의한 것으로 보이는)다.

다이앤을 닮은 금발의 종업원, 리타를 닮은 흑발의 이웃...

그녀의 무의식이 빚어낸, 외모가 유사한 존재들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그 외 언급할 만한 것들로는, 먼저 귀도 레니의 <슬픈 베아트리체>. 

리타가 있는 방으로 들어갈 때, 그리고 리타와 다이앤이 마주보는 장면에서 등장한다.

해당 작품은 그 유명한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그림과 구도는 비슷하지만 귀걸이를 하고 있진 않다.

리타가 차 사고로 진주 귀걸이 한 쪽을 잃어버린 것처럼.

기억을 잃은 리타(다이앤)의 운명이 결국 불행에 이를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그리고 초반에 비추는 <선셋 대로> 표지판.

여배우의 광기어린 욕망을 다룬 영화(감독 빌리 와일더)의 제목이다.

다이앤 역시 여배우를 꿈꾸는 인물이니 절대 우연이 아닌 요소.




마지막으로 다이앤의 자위 장면.

난해하다는 말을 한방에 날려버릴 만큼 영화의 테마를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