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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사랑의 모양(Shape of water)



 
코메박 컴포트6관에서 관람했다. H열 중앙이라서 만족스러웠지만 G열이었다면 더 좋았을 듯. 이상하게도 처음부터 감정이 목구멍부터 올라와서, 끝날 때까지 나를 매료시키는 영화였다. 내 취향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멱살잡힌 느낌? 특히 흑백으로 처리된 부분에서는 그 울컥함이 절정에 이르렀고 결국 엔딩에서는 눈물이 또르르...
 
이 영화는 무척 친절하다. 초반에 등장하는 복선들은 보자마자 '그거군'싶을 만큼 정직하다. 이 친절함이 동화적인 컨셉에 한 몫 하면서 아쉬운 지점이기도 하다. 나처럼 감춰진 걸 파헤치기 좋아하는 습성을 지닌 종자들에게는 달갑지 않은 일이다. 설명에 의해 얻게 되는 지적 쾌감은 스스로 유레카를 외칠 때의 쾌감을 이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영화가 소수자 차별에 대해 갖는 태도가 그다지 인상깊지 않았다.
 
영화의 큰 테마는 온갖것들에 대한 사랑이다. 수의 많고 적음에 따라 우월성이 결정되지 않는다. 생김새가 다른 것은 물론이거니와
잊혀지고 사라져가는 것, (이렇게 표현하기 싫지만)불완전한 것까지 모든 것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사랑이다. 이를 종교(신화 포함), 그리고 시간의 차원으로 끌어다놓고 풀어놓는다.
 
종교/신화가 등장하는 이유는 다양성이라는 테마를 풀기 위함이다. 영화 속 악역인 리처드는 크리스천으로, 신의 모습이 자신과 같은 인간의 형태를 닮았을 거라고 멋대로 확신한다. 신이 만든 것은 인간뿐이 아니며 이토록 많고 다양한 피조물들을 만들어 놓았는데도(무신론자가 이런 문장을 쓰려니 어색하군), 그는 신의 진의는 탐구하려 하지 않고 신의 권능만을 탐한다(삼손과 데릴라).
 
그에 반해 엘리자와 길스는 다양성을 포용하는 인물임이 고양이 이름에서까지 드러난다. '이교도'의 신화에서 빌려온 이름들-그리스 신화의 '판도라', 북유럽 신화의 '토르'는 크리스천인 리처드의 배타성과 대척점에 서있다. 인간의 형태가 아닌 생물과 소통하고, 아름다움을 발견하며(길스:뷰티풀!), 사랑할 줄 아는 포용력을 지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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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시간(이렇게 길어지다니...). 그냥 문명의 발달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낫겠다. 문명의 발달에 따라 그림은 사진으로 대체되고, 고전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에는 관객이 들지 않는다. 옛것(골동품)들은 사라지고 잊혀져간다. 길스가 그림 위쪽에 써넣은 "여기에 미래가 있습니다!"라는 문구는, 똑같은 말을 하는 캐딜락 딜러때문에 더욱 초라해진다. 시대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첨단기술의 경쟁이고, 이는 신의 권능에 대한 도전으로써 앞서 말한 종교와 다시 이어지는 부분이다.
 
리처드는 옛것의 아름다움을 모른다. 그래서 역사가 오랜 사탕의 맛도 음미하지 않으며 한 번에 깨물어 먹어버린다. 그 사탕의 익숙한 녹색으로부터 최신 모델 캐딜락의 청록색으로 금새 옮겨가는 사람이다.
 
여기서 영화 초반, 엘라이자가 처음으로 찢었던 달력의 문구를 떠올려보자.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과거는 강물의 흐름과 같다' 뭐 이런 내용이었다. 강물의 흐름(current-영화의 해당 문구가 이 단어를 썼는지는 모르겠다)은 과거도 미래도 없는 현재의 것(current)이다. 영화가 의구심을 갖는 것은 '옛것도 사랑하자'가 아니라, 시간의 '방향성' 자체에 관한 것이다. 시간이란 정말 과거에서 미래로, 낡고 뒤쳐진 것과 새롭고 세련된 것을 나누며 '나아가고' 있는가? 어쩌면 문명의 발달 차원에서의 시간과 절대적인 시간의 의미를 혼동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시간의 영속성 앞에, 옛것을 등한시하고 미래를 향한 기술경쟁을 벌이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 된다.
 
마지막으로, 나는 리처드가 '악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우월하다고 여겨지는 가치를 좇기 위해 필사적으로, 강박에 가깝게 발버둥치는 인간으로 보였다. 그가 캐딜락을 산 이유는 물욕이 있어서가 아니다. 캐딜락이라는 상징을 통해 자신의 인생이 성공적이라는 것을 확인받고 싶어서(ex. 타인들의 부러운 시선) 산 것이다. 완벽한 커리어, 대도시에서의 삶, 성공한 미국인의 상징인 캐딜락, 그리고 종교까지. 그는 '장밋빛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미국인의 전형이다. 그에게 불완전한 것이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제 기능을 못하는 손가락은 비틀어버리고, 이 모든 것을 타인에 대한 분노로 쏟아낸다. 오만하면서도 무언가에 쫓기는 듯한 그의 모습은 시대의 욕망에 지배당한 인간을 반영한다.

마무리하는 말은 왓챠에 남긴 평 일부로 대신해야겠다.

온갖것들에 대한 사랑, 시간을 품은 것들에 대한 사랑.
불완전한, 나의 있는 그대로를 품는 물의 형태를 한 사랑.
오직 자유롭고 영원한 것, 사랑에 대한 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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