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터는 아주 따뜻한 톤으로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보니 그보다는 조금 낮은 온도의 차분한 영화였다.
그 이유인즉 영화로 확인할 수 있으며, 로맨스 영화라기엔 상당히 독특한 구석이 있는 작품이다.
남여가 아니라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관계맺기를 다루기 때문.
사실 '감정적으로 결여된 인간'이 서서히 감정을 배워간다는 게 참신한 것은 아니지만,
이 영화는 인상적인 이미지들을 통해 해당 주제와 소재를 끌고간다.
영화 속에서 이야기하는 우리의 몸이란 두 종류다. 동물로서의 살점 그 자체, 아니면 교감의 매개체.
동물로서의 살점은 소들에게 사용하는 '교미 가루', '도축된 소'와 겹쳐진다.
이 살점은 사랑이 없는 육체적 쾌감, 작위적인 관계를 위해 쓰인다. 핏기없이 창백한 관계라 할 수 있다.
엔드레(남주)와 사랑을 하기 전, 마리어(여주)의 몸은 동물로서의 살점이다.
마리어는 비상한 기억력과 함께 강박증세도 보이는 사람이다.
규정 준수에 엄격한데다, 현실세계에서 그녀는 '대화'에 어려움을 겪어서 시뮬레이션까지 해볼 정도지만,
대화가 없는 꿈 속 세계에서는 어려움이라든가 장애가 없다.
코를 맞댄다든가 함께 같은 장소를 노니는 비언어적인 교류들(눈빛도 좋은 예가 될 수 있다)이,
대화에 서투른 그녀에게 좀더 효과적인 교류방식으로 다가온다.
그녀는 사랑을 전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도축'할 뻔하지만,
엔드레와의 사랑으로 그녀의 몸은 교감의 매개체가 되기에 이른다.
카메라는 성관계를 하는 몸이 아닌 얼굴을 비춘다.
마리어에게 감정적 결여가 있었다면, 상대역인 엔드레에겐 살점(왼쪽 팔)이 부분적으로 결여되어있다.
생활이 조금 불편하지만, 꿈에서 그는 사슴이 되어 자유롭게 연못가를 노니고 달리기도 한다.
또한 살점의 결여는 현실적인 불편함과 동시에 그가 육체를 통한 교감에 매우 목마른 사람임을 암시한다.
그래서 도축되는 소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도축되는 소들을 보고도 아무런 느낌이 없다면,
교감의 매개체로서의 육체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테니까.
그 예로 산드로는 그저 살점으로서의 육체만 감상하며, 마리어를 성희롱하는 인간이다.
영화의 톤은 점차 부드러워지고 따뜻해지면서 결말을 맺는다. 피가 있고, 온기가 있다.
더이상 꿈의 세계에서 교류할 이유가 없기때문에 사슴도 자취를 감춘다.
마지막에 빵 부스러기를 치우는 모습이 너무너무 사랑스러웠다.
아마 그 전의 마리어였다면 접시에 털기보다는 쓰레기통으로 직행하지 않았을까? 강박적으로.
마리어의 변화된 모습이 따뜻하고 소박하게 연출되어 좋았다.
On body and soul 이라는 원제는 주제를 너무 많이, 직접적으로 노출시키고 있는 듯.
오히려 무슨 내용일지 궁금증을 유발하는 우리나라 제목이 더 나아보인다.
(하여간 뭐든 감추는 게 내 취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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