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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Ready player one)






제목부터가 아주 기분 좋다. 흥분과 약간의 긴장감이 섞인 그 감정. 고전 레이싱 게임 Lotus에서 출발을 기다리며 부릉거리던 그 느낌. 게임을 시작할 때의 그 떨림이 고스란히 전해져온다. 집에 패미컴과 호환되는 국산 게임콘솔이 있어서, 그걸로 마리오 브라더스3를 플레이한 게 처음으로 접한 게임이었다. 그 후로 PC게임과 도스게임을 하고, 친구것을 빌려서 플스로 귀무자도 해보고, 온라인 게임도 이것저것하면서 게임을 손에서 놓은 적이 없었다. 가끔 생각날 때마다 영웅전설같은 고전 게임을 다시 하고, 사실은 지금도 대항해시대 파워업키트 하는 중... 게임을 아주 깊게 판 덕후라고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이런 영화에 흥분할 정도는 된다고 생각한다. 


영화가 시작되고 스크린에 펼쳐진 오아시스를 접했을 때, 제발 멀지 않은 미래에 '진짜로' 오아시스가 나오길 바랐다. 그 동안 현실도피 하고 싶을 때마다 그리드 아일랜드로 가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진짜로 죽을 수 있으니까 관두자. 그래. 이제는 오아시스가 짜세인거야. 영화 속 오아시스의 플레이어가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관람객들은 게임 속 가상현실인 오아시스로 던져지고, 스필버그는 초반부터 우리를 사로잡겠다는 생각으로 박진감 넘치는 레이스를 선사한다. 아이맥스 3D로 이 시퀀스를 보고나면 게임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건 당연지사. 다소 과격한, 그러나 즐거운 초대방식이다.


이 영화는 마치 덕력을 시험해보라는 듯 많은 레퍼런스들을 품고 있지만, 나는 이게 조금 다르게 읽힌다.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이름을 줄줄 외울만큼 대중문화를 접한 사람뿐만 아니라, 이중에 하나라도 당신이 애정을 가진 창작물이 있다면. 추억이 깃든 만화, 게임, 영화, 음악... 

하나라도 있다면 오아시스에 들어갈 수 있다.


나는 팝에 대해 잘 모른다. 슈게이징으로 넘어가는 부분에서 드림팝이나 약간 들었지 나머지는 대부분이 브릿이었다. 듀란듀란, 비지스도 이름은 알지만 기억에 남는 곡이 없다. 하지만 댄스장 씬에서 내 귀에 쏙 꽂힌 곡이 있으니 New order의 Blue monday. "How does it feel?" 내가 줄기차게 듣던 그 곡이었다. 


처음으로 New order의 곡을 들었던 때가 떠올랐다. 당시 버스를 타고 가다 내리기 위해 일어서 있었는데, mp3에서 New order의 곡이 흘러나오는 순간 다리가 풀려서 조금 주저앉았다. 신디사이저를 활용한 신스팝! 혁신적인 곡이었다. 물론 그 전에 신디사이저를 쓴 곡을 안 들어본 것은 아니었고, 내가 계보에 따라서 음악을 들었기때문에 놀란 것이다. 해당 시대에 뉴오더가 신스팝을, 그것도 아주 멋지게 선보였다는 것에 놀라서.



많은 사람들이 이런 걱정을 할 것 같다. 

"내가 이 영화를 즐길 수 있을까?"

"나는 그 정도로 덕후는 아니라서 못 즐길 것 같아."


맞다. 이건 덕후가 아니면 감동의 포인트가 잘 자극이 되질 않는다.

새로이 움직이는 아이언 자이언트와,

"오레와간다무데이쿠!"라고 말한 후 멋지게 빔사벨을 들고 나타난 건담을 보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에게 더 감격스러운 영화다.

그래서 덕후들의 극찬만 믿고 기대치를 높이면 안 된다.


물론 사전에 학습이 가능한 부분도 있다.

영화를 보기 전에 큐브릭의 <샤이닝>을 감상하고, '아키라 바이크'가 무엇이며,

존 휴즈가 어떤 장르의 영화들을 주로 만들었는지 알아보고 가면 된다.

게다가 킹콩, 처키같은 몇몇 레퍼런스는 너무도 유명하지 않은가. 



하지만 적어도 '게임'에 대한 관심은 좀 있어야 할 것이다.

이 영화가 펼쳐지는 무대가 바로 오아시스라는 게임이니까.

롤플레잉 게임, 온라인 MMORPG 이런 것을 하나라도 재밌게 해 본 사람이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게임에 별로 관심이 없다면 글쎄... 좀 시큰둥하지 않을까?


특히 아타리 2600같은 것은 미리 알아보고 간다고 해도 감동을 느낄 수가 없다.

아타리 2600이 등장한 순간 '아, 역시!'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아타리가 게임의 역사에서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 머리로는 알고 가더라도

해당 장면에서 감탄사가 나오지 않으면 맛이 안 난다. 무게감을 모르기때문에.

아타리가 그저 미션을 위한 도구로만 받아들여진다면 이 영화는 그저 유치한 오락영화에 불과하다.

게임팩을 살짝 달각거리며 쑤욱, 콘솔에 집어넣을 때의 감각.

컴퓨터로 재즈잭래빗 같은 도스게임을 하고, 씨디를 넣어 소닉이라든가 팔콤 RPG 를 하고,

플스로 귀무자를 하고, 튀동숲을 하고...




레디 플레이어 원에 등장하는 레퍼런스들에 관심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면

초반부의 레이싱 시퀀스만 즐길 만 할 것 같다.

나머지는 관심사와 먼 부분이니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내가 애니메이션을 좋아해서 친구들을 데리고 극장판 애니메이션을 보여준 적이 몇 번 있어서...

경험해본 바 그렇다...



영화를 처음 관람할 때에는 레퍼런스를 찾겠다는 생각은 접어두는 게 좋다.

찾는 건 나중이고 일단 영화 속 분위기에 빠져드는 게 먼저니까. (눈을 뜨세요, 용사여!)

그러고나서 오래오래 되새김질하면 된다. 너무 빨리 찾아버리지 말자. 매일 다른 친구를 만나듯 천천히, 조금씩 찾고 싶다. 추억팔이를 길게 하고 싶다는 소리.ㅎㅎ 그리고 스필버그도 레퍼런스를 찾겠다고 하루종일 레디 플레이어 원만 돌려보는 일은 원치 않을 것이다. 현실세계로 좀 나가라고!



그래도 대중문화를 사랑해왔던 이들에게 선물같은 영화임에는 틀림 없다. 나는 뒤늦게 산타클로스를 믿기로 했다. 수많은 어른들을 소년 소녀로 만들어주는 스티븐 스필버그, 그는 대중문화를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산타클로스다.




+그런데... 할리데이가 만들었다는 무슨 맨션 게임의 춤추는 좀비 캐릭터는 정말로 그 게임이 원조인가? 난 당연히 악마성 시리즈의 몬스터라고 생각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