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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夜は短し歩けよ乙女/Night is short, Walk on girl)







이 영화의 포스터를 보고 곤 사토시가 퍼뜩 떠올랐는데(<파프리카>가 번쩍!하고), 나만 그런 게 아니었나보다. 이 애니메이션의 혼란스런 이미지가 곤 사토시와 닮아있다는 의견들이 심심찮게 들려오는 걸 보면. 그러나 곤 사토시와 그 사용방식이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곤 사토시는 혼돈 그 자체의 내부를 들여다보고 탐구하려는 의도가 강해보인다는 것이 이 작품과의 차이점이다(내가 곤 사토시에 관해 빠삭한 것도 아니고 먼 기억 속의 파프리카를 끄집어내서 속으로만 대조해본 것이라 그다지 자신은 없다...).



감독의 작품이 난해하다고들하는데, 적어도 이 작품은 어렵지 않다. 동명 소설이 원작으로, 일본 문학에서 흔히 보이는 두 가지 스타일이 합쳐져 있기때문이다. 현실의 평범한 인간이 신비한 밤에 요괴들과 접촉하게 되는 내용(밤에 길을 잘못들었는데 거기가 요괴들의 세계였다든가 요괴들의 괴이한 연회가 벌어지고 있었다든가하는)은 일본의 만화, 영화, 문학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소재이며 여기에 과장된 학원 코미디가 접목된 작품이기 때문. <백귀야행>, <오란고교 호스트부>를 예로 들 수 있겠다. 이것만 알고 봐도 이해가 쉽다. 갑자기 텐구가 왜 나와? 저 괴상한 사람들은 뭐지? 이에 대한 해답은 일본의 요괴문화에 답이 있으며, 마찬가지로 능력이 과장되어있는 학생회장과 유별난 학원 연극 또한 일본 학원물에서 보이는 특징이다(일본 만화에서 흔히 보이는 학생부 삼대천왕 이런 캐릭터 설정ㅎㅎ). 한 쪽이 요괴인만큼 학원코미디쪽도 좀더 독특한 설정을 보여주면서 한 쪽의 세계가 붕 뜨지 않도록 균형을 맞춘다. 독특함을 넘어서 괴랄함으로...


독특하고 깨알같은 유머(예를 들면 조작이 무의미한 ‘인간’뽑기-인형뽑기의 인간버전)를 포착하며 보는 재미가 있다. 예를 들면 조작이 무의미한, 인기투표와 다를 바 없는 '인간'뽑기라든가 남자주인공의 페티쉬(모에포인트?)가 뇌내 패널에 비춰지는 표현들이 흥미롭다. 신카이 마코토와 호소다 마모루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로선 이 감독의 작품이 좀더 소개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다작도 해주심 좋고.



덧붙임


일본여행 중에 오사카와 교토의 절을 방문했었는데, ‘진쟈’ 니손‘인’ 기요미즈‘데라’ 곤고부‘지’ 이런 식으로 끝부분이 다 달라서 차이가 뭔지 현지인에게 물어봤다. ‘인’과 ‘데라’, ‘지’는 불교 사찰이라 승려가 있는 곳이고, 진쟈는 신토라서 신관과 무녀가 있다는 답을 얻었다. 검색을 통해 좀더 알아보니 원래 신토와 불교가 혼재했었는데 지금은 분리되어서 구분한다고 한다. 


이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텐구를 비롯한 요괴들은 신토에 기반한 존재라고 볼 수 있다. 일본 만화에 보면 집 근처 진쟈(신사)에 가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우리는 절에 가려면 꽤 먼 길을 가야하는 게 보통인데말이다. 진쟈에서는 동물신을 모시는 경우가 많고, 그래서인지 일본의 토속신앙인 ‘신토’에서는 요괴들을 굉장히 친근하게 느끼며 일상 속에서 등장시키는 특징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