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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Call me by your name)






제임스 아이보리의 <모리스>를 괜찮게 봤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 그가 각색한 작품이기도 하고, 개봉 전부터 워낙 관심과 인기가 뜨거운 영화였기에 프리미어로 관람했...는데.


사실 반쯤은 예견된 결과였다. 그래도 이만큼이나 격찬을 받는 영화라면 다를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있었으나 끝내 감동을 받지는 못했다. 멜로 영화라는 장르 자체에 흥미가 별로 없기도 하고, 왕가위 작품을 제외하고는 좋게 본 게 거의 없다.


이유는 나 개인의 문제, 그리고 영화 화법의 문제로 볼 수 있다. 앞서 말했듯 나는 멜로라는 장르 자체에 흥미가 없다. 첫사랑에 대한 강렬한 기억이나 애틋함이 없기에 첫사랑이라는 단어를 보고, 듣고, 읽고, 말해봐도 뜬구름처럼 모호하고 낯선 느낌이다. 날카로운 첫키스의 추억 이딴 거 없음. 그래서인지 영화를 보면서 눈물은커녕 뭉클한 마음조차 들지 않았다.


어쨌거나 이건 내 사정이고, 두 번째. 원작은 엘리오의 ‘회상’형식으로 펼쳐진다('어쩌면 그 때부터였는지도 모른다'...). 영화도 마찬가지로 올리버와 함께했던 기억의 단편들을 되뇌이는 회상의 형식으로 진행된다. 그 때 그랬지, 그랬었지하며 기쁨과 슬픔, 부끄러움 등 여러 가지 감정들이 섞인 나날들. 이 기억들은 보통의 멜로영화와 달리 감정의 고조를 향해 나아가지 않고 그저 펼쳐진다. 애틋한 부분을 과하게 강조하지도 않는다. 푹신한 베개 속으로 서서히 얼굴을 묻다가 다시 얼굴을 돌리고 고쳐누우면서, 평온한 밤을 이리저리 뒤척이며 뜬눈으로 지새우듯 흐른다. 


영화에서 유일하게 감탄한 장면이 있다면 바로 마지막 부분이다. 겨울날 벽난로 앞에 앉은 엘리오가 앞선 날들을 회상하고 있는 것일까. 온갖 감정이 지나가는 그의 표정. 놀라운 연기력이었다. 

원작에서는 그의 음험한 부분을 포함하여 좀더 풍부한 엘리오의 욕망을 읽을 수 있다. 영화를 보기 전이든 후든 원작을 읽어보는 것이 좋다. 소설 원작의 영화화를 두고 “원작을 망쳤다”고 평하는 경우를 자주 보는데,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둘 다 나름의 매력에 충실하다. 그리스/로마 유물들이 나오는 오프닝 시퀀스, 철학 교수 올리버와 박학다식한 엘리오의 관계는 고대 그리스/로마에서의 동성애 문화, 특히 철학자와 그 제자의 관계가 강하게 연상된다. OST는 아주 좋진 않았고 몇 몇 곡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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